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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동물원의 변신보다 놀라운 것

소금인형kgb 2012. 2. 6. 02:35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보며 눈물 흘린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살갗을 닳게 할 정도의 추위 속에서 펭귄들이 발휘하는 어마어마한 가족애를 보며 감동하는 건, 그저 신기함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그 심정을 아니까, 혹은 요즘 갈수록 비정해지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 응당 가져야 할 모습을 그 동물들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이처럼 어떤 매체가 동물을 보여줄 때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감동이란, 이렇게 사람과 동물이 감정적으로 하나가 될 때일 것이다. 동물이 우리 안의 구경거리가 아닌 소통의 상대가 될 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동물이 소재인 영화를 연출한 것도 엉뚱한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힐링 무비'에 능했기 때문이다. 그를 전세계에 알린 <제리 맥과이어>부터 해서 전작인 <엘리자베스타운>까지. 그가 풀어놓는 삶에는 늘 세월 속에서 한번쯤 겪게 되는 큰 시련과 변화의 과정이 담겨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어떤 아픔과 만나고 어떤 치유를 경험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가족영화인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또한 그런 '힐링'의 느낌이 가득 담겨 있다. 이 가족영화의 모습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건, 흔한 할리우드 가족영화가 뽐내는 향기없이 행복한 가족이 아니라, 각자의 상처와 고민 속에서 서로 보듬으며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촉매로, 동물원이라는 게 등장하는 것이다.

 

 

모험을 업으로 삼고 살았던 칼럼니스트 벤자민 미(맷 데이먼)는 얼마 전 아내를 잃었다. 제아무리 모험을 즐기는 그라지만, 홀로 두 아들딸을 책임지고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지금의 삶은 매뉴얼도 없었던 모험이다. 벤자민은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으면서도, 학교에서 말썽만 일으키는 아들에게는 좀처럼 애정이 가지 않는다. 분위기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일을 그만두고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고심 끝에 새 집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그 집은 폐장 직전의 동물원이 딸려 있는 곳. 동물을 좋아하는 딸에 못 이겨 이사는 하지만, 벤자민 가족은 하루아침에 동물원의 소유주가 된다. 사육사인 켈리(스칼렛 요한슨),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소녀 릴리(엘르 패닝)를 비롯한 직원들은 여전히 동물원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동물원 재개장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알부자도 아니고, 평범한 가장인 벤자민에게 동물원을 산 뒤 재정이 넉넉할리 만무하다. 형 던컨(토마스 헤이든 처치)도 미친 짓이라며 말리고, 조사관은 깐깐하고 얄밉기로 소문났다는데, 과연 이 동물원은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영화 속 주인공인 벤자민 미가 쓴 동명의 실화 에세이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 책은 갖가지 동물들과 자연의 모습들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간다. 책의 시선이 동물과 자연을 향해 있다면, 영화는 이들을 지나 결국 인간에게로 시선이 돌아온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물원의 모습과 이를 떠안게 된 벤자민 가족의 모습을 병치시킨다. 희한하게 그들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벤자민 가족이 동물원의 소유주지만, 그들은 기적처럼 동물원을 살려내거나 하는 일방적인 영웅이 아니다. 벤자민 가족과 동물원은, 마치 운명 공동체라도 되는 듯 똑같이 서로를 치유하고, 또 치유받는다. 단지 생태학적으로 공존하는 걸 넘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벤자민 가족은 할리우드 가족영화들을 획일적으로 수놓는 그런 이상적으로 화목한 집단이 아니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있고, 그래서 겉으로 내색은 안해도 힘들어한다. 이렇게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가족이기에, 아무리 아버지, 아들, 딸 같은 전형적인 역할이라도 그들의 연기는 전형적이어선 안된다. 다행히 어느 옷을 입혀도 잘 소화하는 배우인 맷 데이먼은 그런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고뇌와 대범함을 멋지게 소화했다. 고정되지 않은 이미지 덕분에 그는 '본' 시리즈의 액션 히어로 캐릭터도 완벽히 털어내고, 그야말로 영화 속 딸의 말처럼 좀 더 '잘 생겼을' 뿐인 평범한 아버지 역으로 훌륭히 변신했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스칼렛 요한슨 역시, 섹시녀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 건강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기존의 이미지가 있다보니 가만 있어도 저절로 맷 데이먼과 멜로 라인이 솔솔 올라올 것 같은데, 담백한 연기로 그런 분위기를 용케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극중 켈리가 벤자민에 대해 감정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그 감정에 대해 오버하지 않고 털털한 모습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아역 배우들 또한 들러리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벤자민의 고민 많은 아들 딜런 역을 맡은 콜린 포드는, 어린 나이답지 않은 반항아의 기운과 그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랑받고픈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이제는 언니인 다코타 패닝보다 더 큰 것도 같은 엘르 패닝은, 딜런의 곁을 맴도는 발랄한 소녀 릴리 역을 맡아 영화에 꽃미소를 가득 뿌린다. 이와 함께 벤자민의 막내딸 로지 역을 맡은 매기 엘리자베스 존스 역이 귀여움도 발군이다. 귀여움의 임팩트로 따지자면 드라마 <애정만만세>의 김유빈 양(다름이 역)에 버금갈 정도라, 영화를 본 관객들의 상당한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과 동물이 나오는 영화이지만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단순히 가족영화라고만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가족이라는 집단에게보다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하는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족을 궁극적인 공동체로 여기며 낯간지럽게 화합과 화목의 메시지를 설파하지 않는다. 아버지든 아들이든 각자의 가치관을 지닌 인격체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고민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것을 서로에게 강제하지 않으며 치유해 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동물원이라는 매개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벤자민 가족은 일방적으로 동물원을 구제하는 역할이 아니다. 동물원으로부터 가족들 또한 영감을 얻고, 그것이 다시 동물원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치유와 공감이 서로를 에워싸며, 결국 그들을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동물원이 안고 있는 고충과 벤자민 가족이 앓고 있는 고민을 나란히 놓고서 이 둘이 상당히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오래된 시설과 병든 동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물원과, 가족을 잃은 상처로 여전히 침울해 있는 벤자민 가족은 비슷한 점이 많다. 동물원은 새 주인을 기다리지만 사람들은 번번히 부담을 느껴 도망간다. 벤자민 가족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사를 감행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출발'인지 아니면 단순한 '도피'인지 혼란스럽다. 벤자민 가족과 동물원이 본격적으로 만나면서 그 공통점은 더 두드러진다. 우울증에 걸린 곰, 병에 걸린 호랑이 때문에 동물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는 호랑이를 두고 벤자민은 최대한 노력해 봐야 한다고 하지만, 겪을 만큼 겪은 사육사 식구들은 안타깝더라도 보내줘야 한다고 타이른다. 이 영화가 교훈적인 가족영화였다면 여기서 자연사랑, 동물사랑의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담론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삶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담론의 규모가 작다 느껴질지 몰라도, 오히려 섣불리 뻗어나가지 않고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래서인지 더 진솔하게 느껴진다.

 

 

아파하는 동물들처럼 스스로도 아파하고 있기에, 벤자민과 가족은 그 갈등의 과정에서 다름 아닌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겉으로는 나와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말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버릴 것은 버리고 가볍게 나아가야 하는 법.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러기 힘들다는 걸 벤자민 가족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상처를 잊는다는 건 꼭 그 사람을 잊는다는 뜻일 것 같아서,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우린 좀처럼 그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그 상처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처는 더 우리의 마음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말이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벤자민 가족이 저마다 품고 사는 그늘도 아마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동물들은 언젠가는 그 상처를 낫게 해야 한다고 다독인다. 떠나보낸 이가 못다 이룬 무언가를 위해서, 그리고 아직 그를 마음에 품고 있는 나를 위해서.

 

영화는 '치유해도 잊지 않을 수 있는 법'이 있다고 얘기한다. 상처를 치유한다면 그 상처 속에 남은 소중한 사람도 같이 잊을까봐 두려운 사람들에게, 상처 위에 새살이 돋듯 이별로 당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나다를까아픔 속에서도 벤자민 가족이 얻은 가장 큰 용기의 씨앗은 그 아픔 속에서부터 나왔다. 각자 꿈만 꾸고 꺼내지 못했던 용기의 발판을 찾아낸 것도, 위기에 봉착한 순간 길을 찾은 것도, 모두가 이별로 그들을 아프게 했던 아내이자 엄마라는 존재였다. 또 상처를 찌를까 두려워서, 스스로가 아직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들킬까봐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했던 벤자민 가족이 얻는 깨달음은 결국 이거다. 이렇게 한동안 힘들어했던 것도, 그만큼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 행복이 바래지 않게 하는 건, 아픔에 몸을 가누지 말고 털고 일어나는 것. 상처로 사무치는 것보다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이 훨씬 이로운 일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벤자민이 아이들에게 마치 유산처럼, 한때는 잊으려 했지만 지금은 1분 1초라도 더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을 물려주는 순간. 이는 '상실의 아픔'을 '존재하던 때의 추억'으로 낫게 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며 뭉클한 기쁨을 안긴다.

 

 

이 가족이 '동물원을 샀다'고 내내 자랑하는 것은 비단 물리적으로만 새로운 출발을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는 처방전을 샀다. 새로운 삶을 산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샀다. 20초의 용기만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법을 이제는 아버지를 넘어 아들, 딸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알게 되면서 삶은 또 한번 앞으로 변화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생이 바뀌었는데, 동물원 하나 사는 돈 정도면 그래도 비싼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를 보며 결국 감탄하게 되는 건, 동물원의 환골탈태가 아니라 인간들의 상처에 새살이 돋는 모습이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힐링 마인드'는 여전히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출처 : Man`s Labyrinth
글쓴이 : jimman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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